색다른 스타일의 홀로코스트 영화
이 잔혹한 역사가 계속 기억될 수 있는 것은 결국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홀로코스트라는 무거운 역사를 영화로 보여주는 것은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그 자체로 가짜와 현실을 동시에 취하기 때문이다.
실제를 바탕으로 하면서 영화라는 허구성을 이용해 나치의 잔인함을 목격하게 만든다. 실제보다 더 잔혹하게, 더 감성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단 것이다.
인류가 계속 기억해야 할 범죄긴 하지만, 다른 잔혹한 역사보다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런 분야로 정점을 찍은 영화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다. 쉰들러 리스트는 관객을 학살 현장의 목격자로 초대했다. 그 유명한 '빨간 옷 소녀' 장면을 통해 관객의 감정도 흔들어 놓는다.
그런데 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조금 다르다.
----이후부터는 영화 공식 스틸컷과 함께 관련 내용을 다룹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영화를 보신 후에 읽으시길 권합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 악의 평범성
2024, 존 오브 인터레스트, 공식 스틸컷 |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악의 평범성'이다. 영화는 이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첫 시작은 생각보다 긴 암전으로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혹시 극장에 문제가 생겼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영화가 시작된다.
첫 장면은 위 스틸컷과 같은 잔잔한 가족의 소풍장면이다. 아름다운 강변에서 가족들이 즐거운 휴양을 보내고있다.
그 이후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지만 묘한 위화감이 든다. 집안일을 돕는 가정부와 노동자가 있지만, 가족들은 이들을 무시하는 수준을 넘어 마치 '유령처럼' 대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공식 스틸컷 |
관객들은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 가족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근데 이들이 딱히 나쁘다고 할 만한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가정부를 학대하거나, 노동자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그런 화사한 집안 분위기를 지켜보다보면 살짝 지치는데, 그 즈음이 되어서야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집이 좀 독특한 곳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집에 회의를 하러 온 사람들도 '소각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물론 관객들은 이게 '유대인 소각로'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채지만, 이야기의 분위기는 너무나 평범한 건설회의일 뿐이다.
조금 지나서 독일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잔뜩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뭔가 시작되려나' 싶지만, 주인공은 그저 생일 축하를 받을 뿐이다.
이런 장면들을 거치면서 관객들은 주인공인 인물이 가장 유명한 유대인 학살 교도소였던 아우슈비츠의 소장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된다.
이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비극은 단 하나, 아우슈비츠 건설을 주도하며 이 '행복'을 쟁취하고 즐기기 시작한 주인공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은 폴란드에서 새롭게 정착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승진은 다른 사람이 했고, 본인도 이곳을 떠나야 했다.
부인은 이 행복을 포기하고 떠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자신과 아이들은 여기 남아있겠다고 선언한다. 주인공은 다시 아우슈비츠로 발령을 받기위해 열심히 일하고, 발령을 약속받고 돌아가기로 하며 영화가 마무리 된다.
흥미로운 영화적 장치들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장치들이 많다.
1. 주인공의 옷과 신발, 그는 왜 하얀 옷을 입을까?
주인공인 소장은 집 안에서 신발을 벗는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도 신발을 벗어야 하나?'라고 물어보는 것을 보면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그는 흰색 옷을 즐겨 입는다. 제복을 입는 장면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두 가지가 영화적 장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에 만든 사택은 그의 꿈이자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곳이고, 전쟁을 비롯한 추악한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성역'에 해당한다. 부인과는 한 침대를 쓰지도 않고, 섹스도 다른 공간에서 하고 씻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그는 깨끗한 하얀 옷을 입고, 맨발로 공간을 누빈다.
2. 진심으로 행복을 즐기고 있는 부인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간부들은 전황을 모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부인은 진심으로 '대가리 꽃밭' 같은 모습을 보인다. 만들고 가꿔온 공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찾아온 어머니에게도 이를 자랑하고 '아우슈비츠의 왕비'라는 말을 스스로 즐긴다. 남편이 전출을 가게 되자, 그녀는 남겠다고 선언을 한다. 그녀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유일하게 그녀가 '화를 내는' 순간이 남편의 전출사실을 알게되었을 때다.
3. 신기한 카메라 워크
이 영화는 카메라를 들고 이동하는 샷이 거의 없다. 모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어서, 마치 내가 유령이 된 듯 상황을 지켜보게 된다. 가만 지켜보면 인물들의 이동도 몇 번씩 분할하여 연결한다. 복도를 나가서, 계단을 오를 때에도 두 세 번에 걸쳐 이를 보인다. 같은 장면을 여러 번씩 테이크를 가져가며 제작한 것이다.
그 덕분에 정말 제3자로서 영화를 보게되는 기분이 든다.
4. 잔인한 장면은 정말 1도 없다.
영화의 특성상 잔인한 장면이 등장할 법도 한데, 시각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저 담벼락 위로 지나가는 '연기'와 수용소로 유대인들을 나르는 '기차연기'만 보인다.
소각로를 청소한 물이 강가로 흐르면서 '뼈 조각'이 하나 잠깐 나오지만, 그저 '더러운 것'이라 생각할 뿐 전혀 잔인하게 그리지 않는다.
수용소 난민들이 소각로로 이동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이 마저도 풀숲에 가려지고 이들이 먹던 사과만 직접 보여준다. 수용소 난민들의 고생은 반전시킨 일부 화면과 사운드로 잠깐 등장할 뿐이다. 영화 전체에 걸쳐 시각적으로 보이는 잔인한 장면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가장 잔인한 건 사실 '사운드'다. 가만히 소장 가족의 행복한 생활을 보다보면 멀리서 들리는 소리들이 대부분 뭉개진 비명소리와 우는 소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 바로 담벼락 건너의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배경음악처럼 잔잔하게 깔려있다.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더욱 잔인하게 보이도록 한다.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죽음의 소리나, 가두는 행위들은 아이들에게 '놀이'로 재현되는 별 것 아닌 것들이다.
5. 가장 흥미로웠던 '아우슈비츠 박물관 푸티지'의 삽입
이 영화의 가장 특이한 장치는 바로 '현대의 아우슈비츠 박물관 푸티지'가 삽입되었던 것이다. 보통 이런 장면은 스토리가 끝난 시점이나 스토리가 시작하기 전에 삽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독특한 도전은 영화 스토리의 마지막 부분에 있었다. 주인공이 늦은 시간 퇴근을 하며 기나긴 계단을 내려가다, 갑자기 구역질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오늘날 아우슈비츠 박물관의 청소장면으로 연결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과 희생자들이 걸치고 있던 의복들이 쌓여있는 박물관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보여지다가 다시 주인공이 퇴근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장면의 효과는 정말 독특했다. 관객이 관찰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주인공을 따라 같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청소 장면을 보면서 '나는 미래에서 이 영화적 현실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사실을 환기하게 된다.
문득 주인공의 '고생'에 이입을 하다가, 박물관을 보는 순간 '저 사람이 학살을 지휘했다'라는 잔인한 사실을 자각하면서 그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이 독특한 시도가 가져오는 울림은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암전은 더욱 무거웠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괜찮은 영화다. 주변에서 개봉한다면 당신도 꼭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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