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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이 메인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헐리웃 영화에서 동양인은 평범한 조연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브루스 리(이소룡)의 영화에서는 그가 주인공이긴 했지만, 그건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언제나 영화를 소비하는 계층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을 따르는 백인 남여배우들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동양인은 대부분 신비로운 조언자의 역할이나 우스꽝스러운 조연 역할을 했다. Jackie Chan(성룡)도 헐리웃에 진출하여 많은 영화를 제작했지만, 그 역시도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2010년대 이전까지 영화들은 대부분 그랬다.
점차 미국에 살고 있는 이민 2세대, 3세대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영화에서의 동양인은 '평범한' 역할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드라마에서 이런 모습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헐리웃의 프레임 자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올원>는 반갑다. 그냥 동양인이 주인공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이민자와 그 자녀라는 Identity에 대해 이야기 하는 <미나리>나, <조이 럭 클럽(The Joy Luck Club)>과 같은 류의 영화를 넘어서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나 <샹치>와 같은 오락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동양인에 의한 동양인의 영화
이 영화는 감독부터 주연배우까지 거의 대부분이 동양계 미국인들로 채워져 있다. 제이미 리 커티스가 중요한 역할로 나오긴 하지만, 에블린(양자경 배우)과 그녀의 딸(스테파니 수 배우),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 등 중요한 내용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은 모두 동양인들이다.
영화 초반의 내용을 빌드업하는 과정에서는 동양계 미국인들의 삶이 그려진다. 쉬지도 않고 일을 하는 세탁소에서 일을 하는 가족이나, 딸의 애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방식, 그리고 오래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통역이 필요한 외부자 같은 삶 등.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동양인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다.
미국 이민 1세대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언어만을 습득하고, 사고방식도 본국에서와 똑같다. 하지만 자식에게는 교육을 시켜서 미국인으로서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완성시킨다. 그래서 세대 간의 갈등도 심하면서도, 미국 사회 자체에서도 그걸 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캐나다 시트콤인 <김씨네 편의점>에서도 이와 같은 장면들이 나온다. 자식에게 과도한 참견을 한다거나 하는 등으로 말이다.
<김씨네 편의점>에서는 이러한 삶을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반면, <에올원>에서는 이 동양계 미국인의 삶을 통해 거대한 스토리를 빌드업 한다. 한 가족이 겪는 문제로 인해서 온 우주가 위기에 처하는 정도까지 연결된다면 충분히 거대한 스토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찡긋 - 멋진 아빠 Waymond |
멀티버스(Multiverse)로 인한 컬트적 전개
멀티버스가 최근에 힙한 개념이다. 단일우주(Universe)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여러 '부캐'를 만드는 것이나 '메타버스'를 이야기 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최근 마블 영화 등이 '멀티버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헐리웃 오락영화의 중요한 개념을 담당하고 있다.
<에올원>에서는 이 멀티버스의 개념을 재밌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내린 선택의 기로마다 분기점이 생겨나면서 그 각각의 결과로 인해 연결되는 또 다른 인생들이 존재하는데 그게 바로 멀티버스라는 것이다. 운동선수로 살고 있는 나, 쿵푸영화 배우로 살고 있는 나,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나 등등 여러 명의 '나'가 있는 것이다.
<에올원>에서는 특수한 장치를 통해 '다른 나'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가져와서 사용할 수 있다. 마치 <매트릭스(Matrix), 1997>의 내용들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네트워크에 뿌려져 있는 '나'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멀티버스와 능력을 가져오는 설정 때문에 영화는 상당히 정신없게 진행된다. 중간중간 액션은 상당히 인상적이지만, 정신없는 화면 덕분에 굉장히 집중하며 봐야 한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내용을 놓친다.
이 삶은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영화가 굉장히 난해한 전개와 코믹한 요소로 가득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던지는 주제가 '우리는 왜 살고 있을까?'라는 무거운 내용에 가까운 것 같다.
<에올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굉장히 이중적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혼서류를 준비하는 남편이나, 딸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과도하게 컨트롤하는 엄마나, 자식에게 의존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딸이라는 존재를 싫어했던 아버지 등등. 사실 그들의 행동이 이중적이긴 하지만, 우리네 삶에서 수없이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삶은 그 덕분에 항상 귀찮고 힘들다. 그래서 순간 다 없애버리고 싶다. 그냥 그 모든 불행들을 툭 내려놓고,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인생은 그런 존재와 상황들 덕분에 우리는 또 다른 기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끝까지 놓지않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는 멀티버스라는 상황과 메인 갈등을 통해 이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한 사람의 삶이지만, 그 삶에 겹쳐진 또 다른 삶과 다양한 측면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한 번에 풀어내려는 시도다. 그래서 내용을 한 번에 보고 이해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영화를 보며 느끼게 되는 감동은 색다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과 불합리한 것들, 그리고 아이러니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모든 곳에, 그리고 한 번에. 영화 제목도 장황하지만, 영화 내용을 잘 담아낸 것 같다. 동양인이 주인공인 오락영화 중에서도 '동양적인 내용'을 '헐리웃 스타일'로 풀어 냈다는 점에서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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