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과 수 싸움을 하려다가, 많은 걸 놓친 영화. 이 영화를 보면 잘 만든 하이스트(Heist)영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한국에서 '사기왕'이라고 불렸던 인물이 크게 두 사람이 있다. 주수도와 조희팔인데, 이 둘은 네트워크 마케팅, 일명 다단계 방식으로 폰지사기를 쳤다. 폰지사기 방식은 간단하게 새로운 회원을 데리고 오면, 기존 회원의 투자금과 이자를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돈을 쌓아가는 방식이다.

그 중에서도 조희팔은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정계에 엄청난 뇌물을 뿌려서 잡히지도 않았다. 거기다 중국으로 도망쳤다가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사망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다는 말들이 많았다. 영화 <꾼>에서는 이 조희팔의 사건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그래서 사기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장두칠(허성태 배우)이 죽음을 위장하고 살아있다는 설정으로 나온다.

영화의 간략한 스토리

영화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기 쉬워서 간단하게만 소개한다. 영화는 장두칠의 사기로 인한 피해자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장두칠은 거액의 사기를 친 후에 중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위조업자 밤안개(정진영 배우)에게 여권 위조를 의뢰한다. 그리고 그 여권을 건네 받으며 뒤탈이 없도록 하기 위해 밤안개를 죽인다. 밤안개의 아들 뻘이었던 황지성(현빈 배우)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장두칠과 그 일당들을 노리고 접근한다.

<꾼>은 스토리 구성의 치밀함을 보이려고 노력한 작품이기 때문에 스토리 소개는 줄이고, 한 번 볼 것을 권한다.

관객과의 끊임없는 머리싸움

서스펜스라는 것은 무엇일까? 서스펜스의 핵심은 극 중 인물들은 모르고, 관객만 알게 되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서 관객과 극 중의 인물 간에 긴장감을 조성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동굴 내부 괴물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동굴 밖에서 해맑은 웃음으로 들어가는 주인공을 보여준다면 그것이 서스펜스다.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이 '저렇게 움직이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긴장감을 유도한다.

서스펜스는 선택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마치 신과 같이 모든 것을 알진 못한다. 그래서 긴장감 있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기도 쉽진 않다. 어떤 장면을 더 보여줘버리면, 긴장감이 차갑게 식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죄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는 이 서스펜스의 균형이 더 없이 중요하다.

<식스센스 The Sixth Sense>나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 같은 영화가 거기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관객들에게 무심하게 던져주었던 장면들이, 마지막이 되면서 엄청난 전율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꾼>은 이런 점에서 아쉽다. '사기'에 관한 영화의 특성상 누군가를 속이고, 속는다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관객도 무심한 장면과 사기 트릭을 교차하면서 속여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무심하게 던져주는 장면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 조금 예민한 관객이라면 너무 작위적이라 쉽게 눈치를 챈다. 어설픈 손동작의 마술사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어쩌면 관객을 속여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긴장을 끝까지 끌고 가다보니 쓸데없는 데에 잔뜩 힘이 들어가버린 셈이다.

영화의 스토리와 구성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잘 만든 하이스트 영화는 아니다. 2004년 개봉한 <범죄의 재구성> 이후에도 이 정도에 머문다는 것은 역시나 하이스트 영화를 잘 만드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더 괜찮은 범죄영화가 나오길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