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넷플릭스가 있어서 가능했던 새로운 스타일의 한국 영화. 이 영화 같은 경우에는 '넷플릭스'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적당할 듯 하다. 일반 개봉관에서 개봉했더라면? 글쎄.
범죄영화 - 하이스트(Heist) 장르로서의 도전
범죄 계획을 세우고, 이걸 실행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들을 '하이스트' 영화라 부른다. 삼엄한 경계를 자랑하는 은행을 턴다거나, 미술 작품을 훔치는 등 범죄 스케일이 크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함께 범행을 진행하는 내용이 주가 된다. 한국에서는 <범죄의 재구성>, <도둑들>, <인사동 스캔들> 등이 유명하고, 외국 영화로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와 <이탈리안 잡>, <유주얼 서스펙트>, <허드슨 호크>, <종횡사해> 등이 유명하다.
이른바 정통 하이스트 영화의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로 스토리가 나뉜다. 하나는 범죄를 진행하는 일당이 한탕에 성공하여 신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 또 다른 하나는 범죄를 마치고서 일당끼리 내분을 겪으며 싸우면서 비극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다.
범죄 과정도 빈틈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영화 스토리 구성의 난이도도 높은 편이다. 즉, 괜찮은 영화다 싶은 작품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상당히 보기 어려운 스타일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사냥의 시간>은 반가운 작품이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이스트에 결합된 쫄깃한 총격전
영화의 배경은 경제가 무너져버린 한국이다. 제대로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던 젊은 네 명의 친구 중에 한 사람이 교도소에 다녀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교도소에서 또 여러가지를 배우고 돌아온 주인공은 대만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살자고 친구들을 꼬드기는데, 친구들의 표정이 어둡다.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친구들에게 맡아두던 돈은 거의 종이 쪼가리 수준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만으로 건너가자는 말도 다 쓸모가 없게 된 상황. 이 상황에서 네 명의 친구들은 조직폭력배가 운영하는 도박장을 털기로 다짐하고 이를 실행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여기서 시작된다. 도박장을 터는 과정까진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이 돈을 찾기 위해 동원된 도박장의 해결사가 무시무시한 킬러라는 점. 그저 '해결'이 아닌 '사냥'을 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대만으로 밀항할 배를 기다리며 짧은 시간 동안 안도의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은 점차 목을 조여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기존의 하이스트 영화 스타일이었다면, 오히려 해결사와의 대결이 조금 더 단순했을 것이다. 저지른 범죄에 대한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정도로만 신을 삽입했을 것이기 때문.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킬러와의 대결에 비중이 높아진다. 오히려 도박장을 터는 씬이 더욱 가볍게 느껴질 정도. 총격전 역시 상당히 박진감 있고, 리얼하게 만들어져서 눈을 사로잡는다.
사냥의 시간을 통해 성숙하는 주인공들
영화는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주인공들을 성장시킨다. 먼저, 범죄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준석(이제훈 배우), 장호(안재홍 배우), 기훈(최우식 배우), 그리고 상수(박정민 배우)는 흥청망청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이다. 그냥 주어진대로 살아가면서도 딱히 해방구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교도소에 다녀온 준석이 제시하는 '대만 행'에 다들 눈이 빛나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이곳에서의 삶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말에 모두 공감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돈은 없다. 이들의 꿈을 위한 행동은 결국 도박장을 터는 범죄다. 불법 도박장을 털어봤다 더 나빠질건 없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이 범죄를 통한 성장은 주인공들에게 '목표의식'을 가지고 나아가게 되는 발판이 된다.
주인공들을 성장시키는 두 번째 사건은 바로 킬러의 사냥이다.
충분히 죽일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킬러인 한(박해수 배우)은 "재밌네"라는 한 마디를 남기며 준석을 놓아준다. 그리고는 최대한 멀리 도망가라고 한다. 준석과 친구들은 한에게 쫓겨다니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된다. 이들에게 살 길은 결국 대만으로 도망가는 것.
이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또 한 번 성장을 한다. 장호는 더 이상 외로움을 타지 않게 되었고, 기훈은 부모님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에 남는다. 결국 혼자 대만으로 건너가게 되었던 준석은 오랜 준비 끝에 다시 킬러를 스스로 잡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특히, 준석의 한국행은 '복수'가 아닌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스텝으로 영화가 마무리 된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하이스트 영화라는 점에서 추천할만한 영화다. 그러나 영화 중반 이후부터 진행되는 대결장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이스트 영화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실망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보기 힘든 총기 액션장면을 더 높게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볼지 말지 고민된다면 딱, 절반만 보는 것도 추천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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