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실 넷플릭스 영화라는 말을 굳이 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영화는 그저 영화고, 꼭 극장에 가서 봐야한다는 의미도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낙원의 밤은 넷플릭스를 통해 2021년 발표된 작품으로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걸걸한 목소리의 엄태구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하고, 전여빈, 차승원 등의 배우가 함께 출연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약 두 시간에 걸쳐 시종일관 무거운 색감으로 느와르 영화의 맥을 이어간다. 1980년대 유행했던 홍콩 느와르 영화의 느낌과도 닮아있다. 영화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제주도 역시, 희망찬 느낌의 색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대한 차갑고, 무거운 느낌의 색상으로 컬러 그레이딩이 되어있다.
컬러 그레이딩이 굉장히 차갑고 무겁다. |
느와르 영화의 새로운 시도 - 총기의 등장?
이 영화는 기존 한국 영화들과는 달리 새로운 시도를 한다. 바로 총기의 등장이다. 한국에서는 총기가 전면 불법이다 보니, 영화에서 총기를 찾아보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보통 영화에 등장하는 끔찍한 장면들도 대부분 칼을 이용한 장면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총은 아주 특이한 경우에만 등장하는 편이다.
독특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총을 생각보다 많이 쓴다. 그리고 총을 이용한 액션이 크게 거슬리지 않도록 잘 만들었다.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인 영웅본색 시리즈를 지금 와서 다시 보면, 영화의 총기액션 장면이 굉장히 과장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권총을 맞고 10미터 정도는 날아가버리는 액션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무협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 당시에는 홍콩 느와르 영화 배우들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그런 액션들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 정도 연출을 했으니까. 낙원의 밤에서는 살짝 다르다.
여주인공인 재연(전여빈 배우)은 극중에서 총기를 다룰 줄 아는 인물이다.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나오는 총기액션의 경우에는 상당히 연출이 좋았다. 너무 과장되지도 않았고, 담담한 느낌으로 진행된다. 물론 총기 사용에 따른 특수효과까지도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박훈정 감독의 스타일을 그대로
영화의 감독인 박훈정 감독은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의 각본을 집필했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감독이다. 이후 2010년 무협액션 영화인 '혈투'라는 작품으로 입봉하였고, 2013년 두 번째 장편영화 신세계를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 신세계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느낌을 그대로 옮겨온 느낌이 난다.
그가 각본을 맡았던 '악마를 보았다'나 '부당거래', 그리고 '신세계'나 '마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바로 즉각적인 본론이다.
일반적으로 영화나 소설의 진행은 스토리 빌드업의 과정이 상당히 긴 편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서는 바로 본론에 들어가고, 쓸데없는 스토리 빌드업 과정을 모두 생략한다. 주인공인 태구가 어떻게 깡패가 되었는지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깡패 일을 하고 있는 태구'를 바로 보여주면서 스토리에 진입한다. 그리고 재연 역시 불치병에 걸린 것으로 나오는데, 보통은 현실감있게 '어떤 병이다'라고 언급할 법도 하지만, 그정황만 보이고 그냥 '상황이 그렇다'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독특한 게 영화 자체에 자막이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많은 영화에서 장소나 시간을 알려주는 한 줄 자막 정도를 포함하면서 관객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려는 것과는 다르다. 그냥 카메라가 거기에 있고, 관객에게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는 관객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 아니라, 이 상황을 함께 지켜보는 무형의 '관찰자'로서 영화에 참여하길 바라는 것 같다.
낙원의 끝은 어디일까?
영화는 잔인하다. 피도 많이 나오고, 잔인한 장면도 많이 나온다. 이 와중에 배우들의 연기도 다들 괜찮은 편이다. 내용은 결국 복수이고, 많은 사람이 죽는 액션 영화다. 액션이 격렬하고 잔인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해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 점에서 '악마를 보았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잔인함의 끝까지 가보려던 것이 '악마를 보았다'라면, 낙원의 밤은 상실감들이 연속되면서 '서로 계산할 것을 계산하는' 담담한 스토리가 된다.
가끔씩 나오는 말랑말랑한 씬들이 영화의 긴장감을 해소해준다. 그리고 이 영화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등장하는 깡패들 중에서 살찐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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